그렇지 않아도 무덥던 싱가폴의 밤이었습니다.
나는 세개의 종류가 다른 렌즈와 플래쉬, 리모콘이 든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행사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벌써 일대에 비트가 강한 베이스 음이 울려대고 있었고 나는 시원한 하이네켄 한병을 입에 물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서너개의 분리된 야외 무대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무대마다 다른 자신이 끌리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DJ의 테크노 음악이 쏘아대는 비트에 몸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싱가폴에서 핫한 클럽으로 통했던 Zouk의 야외공연은 세계에서 온 싱가폴의 젊은이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모았고 무덥던 2003년 7월의 어느 날 밤을 달아오르게하고 있었습니다.
눈 부시게 사람들 사이를 쏘아대는 화려한 조명, 심장의 박동을 더욱 빠르게 하는 테크노 비트, DJ의 손놀림 못지않은 무희들의 강렬한 댄스와 함께 무대를 감싸고 있는 자욱한 연기까지… 그 사이에서 나는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습니다.
음악에 취해 무아지경으로 고개를 흔들며 춤을 추는 사람들, 그대로 서서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 커다란 하얀 천 위에 색색가지 색깔로 자유의 메시지를 남기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자유롭고 싶은 꿈많은 젊은이였고 그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는 나도 그들과 마찮가지였습니다.
그 뜨겁던 밤으로부터 벌써 17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귀밑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아마 그들도 나와 마찮가지로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이라고 노래했던 산울림의 노랫말처럼, 어느새 바람처럼 푸르른 청춘이 사라져 갔습니다.
아마 그날 밤의 그 뜨거운 열기를 이제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 역시 잊고 살았으니까요. 그렇게 잊고 살았던 어느날, 나는 저장해두었던 서버에서 우연히 이 사진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래. 아무도 그리고 나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하더라도 우리는 17년전, 2003년 7월의 그날 밤 싱가폴의 그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이 사진이 그것을 남겨준 것이며,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지구라는 별에서 내가 살았었음을 기록해줄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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