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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언제나 나에게 그랬다.

늘 도시는 나에게 무언가 담는 그릇처럼 느껴졌다.

깨지기 쉬운 예민한,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하는 그릇처럼 느껴졌다.

 

거칠고 투박한 콘크리트와 계절마다 색깔이 변하는 나무와 사랑받길 원하는 작은 짐승들과 특성을 정의하기 힘든 인간들, 그리고 그 사이를 바쁘게 이동하는 차가운 철로 만든 탈 것들이 정교하게 촘촘히 얽히고 설켜있는 형언하기 힘든 색깔과 재질로 이루어진 덩어리가 담겨져 있는 도시.

 

해가 뜬 시간이면 그 덩어리는 마치 살아있음을 뽑내듯이 에너지를 내뿜으며 생명체의 심장처럼 박동을 만들어낸다. 낡은 것은 사라지거나 보존을 위해 보수를 받고 새로운 것은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알아달라고 외친다. 인정을 받은 새로운 것은 도시안에서 살아갈 생명을 얻지만, 인정을 받지 못한 새로운 것은 빠르게 사라져간다. 그렇게 그 그릇안에 무엇이 담길 것인지 우엇이 담기지 않을 것인지 결정이 된다.

 

인정을 받기 위한 해가 뜬 시간이 지나면 달이 뜨고 달이 뜬 시간이면 도시에는 잦아든 덩어리의 박동소리만 들려온다. 달이 뜬 시간이 되면 인간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만큼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콘크리트 속으로 몸을 감춘다. 그 시간이다. 그 시간에 차가운 철로 만든 탈 것들이 지배하던 길에 나서면 비로소 도시라는 그릇을 좀 더 제대로 볼 수 있다.

 

 

잦아든 박동수, 사람이 사라진 그 길에는 사라진 사람들 만큼의 불빛이 가득하다. 그 불빛은 특성을 알 수 없는 사람들 만큼이나 다양한 색을 내뿜으며 쉼에 빠진 도시를 아름답게 감싸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광경을 볼때마다 늘 생각한다.

사람이 사라지고 불빛이 지배한 그 시간이 진짜 도시의 모습이라고.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은 사람이 사라진 그 시간에 비로소 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을 때면 달이 뜬 시간에 도시로 나간다.

 

해가 뜨기전 대략 5시경,

 

사람들이 또다른 하루를 인정받기 위해 콘크리트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 시간 첫차는 그들을 태우기 위해 또다른 하루를 달릴 준비한다. 탈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제의 피곤이 아직 덕지덕지 묻어있다.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잠에서 탈출중인 사람,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는 사람, 짝다리를 짚고 선 사람, 초점 없는 눈으로 그냥 서 있는 사람역시 사람은 그 특성을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

 

 

 

나는 첫차를 타고 돌아와 거칠고 투박한 콘크리트 속으로 몸을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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